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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동문화마을 덕동문화마을 조선의 대유학자인 회재(晦齋) 이언적의 동생 농재(聾齋) 이언괄의 4대손인 이강이 경주 양동마을에서 50리 떨어진 이곳에 거처를 정하고 360여년간 대를 이어 살면서 여강이씨 집성촌이 됐다고 한다.
동생 이언괄은 형인 희재 이언적이 관계에 나가면서 어머니 봉양을 위해 이곳에 눌러 앉아 자손 대대로 덕동마을을 문사의 마을로 만들었다.
이 마을은 천혜의 자연조건과 독특한 문화를 높이 평가 받아 1992년 정부로부터 문화부지정 문화마을로, 2001년에는 환경친화마을로 지정받았다.
용계정과 덕동마을 숲 용계정과 덕동마을 숲 용계정은 1546년에 건립되어, 임진왜란때 북평사를 지낸 정문부가 별장으로 사용하던것으로 후손들이 대를 이어가면서 정자원림을 경영해 왔던 조선시대 대표적인 별서이다.
마을 수구막이 숲으로 조성된 덕동숲과 자연계류 등이 잘 어우러진 역사문화 경승지이다.
용계정 부속건물로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맛배지붕인 포사(抱舍)가 있으며 수백년전 은행나무, 향나무, 백일홍 등이 용계정을 둘러싸고 있다.
이 마을은 조선 중기 여강이씨의 집성촌으로 덕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고 하여 ‘덕동(德洞)’ 이라 불리었다.
애은당 고택 애은당 고택 북평사(北評事), 전주부윤(全州府尹)을 지낸 바 있고 임진왜란 당시 많은 공을 세운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 선생이 식솔들의 피난처로 사용하다가 임진왜란 후 고향인 진주로 이사하면서 그의 손녀인 사의당(四宜堂) 이강(李薑)에게 재산 일체를 양여하였는데 1695년 3월 이강(李薑)의 7남매 자녀 분가시에 4남 이덕소(李德邵)의 분가로 관리해 오다가 현재의 소유주인 이동우(李東禹)의 5대조 이재급(李在伋)이 매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채는 정면 4칸반, 측면 3칸반이며,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목조와가이다.
이원돌 가옥 이원돌 가옥 이 가옥은 조선 선조 때 북평사를 지내고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농포 정문부가 식솔들의 피난처로 사용하던 집이다.
농포 정문부 선생이 임진왜란 후 손서인 이강에게 별옥 일체를 양여할 때의 부속건물 중의 일부로서 이강의 둘째아들 이덕령에게 물려주고 현재에 이르렀고 현 소유자인 이원돌은 이강의 9대손(代孫)이다.
정면 4칸, 측면 6칸의 목조와가인 이 가옥은 'ㅁ' 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조선 중기에 창건한 건물로 당시의 시대상을 잘 나타내주는 주택평면구성이다.
사우정 고택 사우정 고택 사우정은 조선 선조 때 북평사를 지내고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농포 정문부가 식솔들의 피난처로 사용하였던 집이다.
농포 정문부 선생의 조부이신 정언각이 청송부사로 재직 당시 지리에 밝은 청지기가 일러준 길지로 “활란가거 천하지낙양” 이라 불렀다고 전하며, 이로부터 땅을 점유하여 집을 건축한 것으로 추정된다.당시 지명이 송을곡이라 불렀는데 임진왜란 당시 왜병이 송자가 든 지명에서 패전한다는 설이 있어 이곳을 피난지로 삼았다고 전한다.
경상북도 수목원 경상북도 수목원 내연산 남쪽 산줄기 600m 고지에 조성한 경상북도수목원은 6년간의 준비 끝에 개관한 자연학습장, 총 3천222ha의 부지에 1천510종 17만9천226본의 나무와 풀이 식재돼 규모면에서 동양최대를 자랑한다.
전시실에는 목재표본과 약용 식물 야생동물 박재등을 전시하고 야외에는 인공연못을 만드는 등 휴식공간을 조성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정보와 함께 소품하기에도 적합한 장소를 만들었으며 경북지역민들의 학습 및 휴식공간으로 활동할 수 있고 아름다운 인공연못이 있어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적합하다.
포항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 포항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 문성리는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이전인 60년대부터 주민들 스스로 마을 길을 넓히고 지붕개량을 하는 등 온 동네가 뭉쳐 노력한 결과 전국에서 잘 사는 마을의 표본이 되어 대통령까지 이 작은 마을을 방문하게 됐다.
당시 현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의 시장, 군수는 문성동(리)과 같은 새마을을 만들어라”고 한 말이 전국 방방곡곡에 메아리쳐 우리나라 근대화의기틀을 쌓게 한 것이 새마을운동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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